‘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몸이 허하거나 기력이 없을 때 특별한 약을 지어먹는 것보다도 평소 끼니를 거르지 않고 건강하게 챙겨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방에서 ‘병이 생겨나기 전에 미리 예방한다’는 뜻의 ‘치미병’과도 그 의미가 통한다. 약재를 사용해 건강을 유지시켜주면서도 맛 또한 놓치지 않는 약선음식의 종류와 그 레시피를 알아보자.
속도 전쟁의 시대, 건강에 초점을 둔 약선요리
무엇이든 속도가 기준이 되는 시대다. 이동통신상품 광고에서는 앞 다투어 ‘빠름’을 강조하고,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내놓는 경로의 기본값은 항상 빠른 길이 기준이다. 음식 또한 마찬가지다. 패스트푸드는 단어 자체가 ‘빨리 만들어지는 음식’이라는 뜻이고, 신속배달은 중국음식점 전단지의 빼놓을 수 없는 광고문구다. 이처럼 적당히 맛있고 빠르면 좋은 음식으로 평가되는 시대에도 건강에 초점을 두어 몸을 치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약선요리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약선 요리는 약용으로 쓰이는 약초와 한약재를 음식 재료로 사용해 보다 몸에 좋게 만든 음식을 뜻한다. 이른바 현대 웰빙 요리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는데, 약초와 한약재의 효능은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음식 특유의 맛을 지켜내는 것이 특징이다.
약이 되는 음식, 음식으로 다시 태어난 약재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음식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많았다. 중국 전한의 유안이 저술한 에서는 신농씨가 약초의 맛을 보며 독이 있는 풀을 구별하고, 어떤 풀이 식용이 가능하고 또 약초의 특징을 지니는지 알아내어 약선의 기초를 마련하였다고 평가한다. 그후 춘추전국시대에 각종 학문이 발전하고 음양오행설이 형성되면서 약선이 크게 발전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고구려 이후부터 중국에서 약선요리가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시대에는 식치(食治)라는 말이 음식으로 몸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쓰였다. 조선 초기 세종 때 본초류의 문헌들이 편찬되면서 약선 연구가 활성화되다가 조선 중기에는 선조의 명을 받은 허준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학서적을 집대성해 을 저술하게 된다. 이 일은 한의학뿐만 아니라 약선요리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최근에는 약선요리만을 특화시킨 약선요리 전문 음식점이 생겨나고, 2013년에는 보건복지부가 주최하는 에서 약선요리 경연대회가 개최되는 등 더욱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약선요리에 즐겨 사용되는 가을 제철 한약재 Best3
① 황기
황기는 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식물로 고려시대에는 수판마, 조선 초기에는 감판마로 불렸다. 폴리산, 콜린 등의 약효성분이 있으며 소변배출을 용이하게 하고 한방에서는 면역 기능을 강화킨다. 또 신체 대사의 활성화를 도와 간장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황기가 약선요리에 자주 이용되는 까닭은 약성이 온화하고 단맛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삼을 쓴너삼, 황기를 단너삼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일반적으로 닭이나 오리와 함께 요리하여 먹으면 땀을 덜 흘리게 하고 보신 효과가 뛰어나다. 가을에 채취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으로 부작용이 적고 영양가가 높으며 효과가 좋다.
② 대추
가을에 수확하여 추석 차례상에 빠지지 않는 대추는 한방에서 노화를 방지하는 약재로 여겨졌다. 대추 열매는 신경안정과 혈액정화, 자양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대추나무 껍질은 설사가 날 때, 뿌리는 하열(신체의 아랫부분에 열이 있는 것)이 있을 때, 어린잎은 전갈에게 물렸을 때 사용해왔다. 성질이 따뜻하고 위를 편하게 하여 한약재로 자주 쓰이는 것은 물론, 비타민C 함유가 많고 맛도 달콤해 각종 고명과 인절미, 전병, 차 등 음식으로도 즐겨 사용되었다. 단, 풋대추를 많이 먹으면 설사를 유발할 수 있으니 소량으로 섭취해야 한다.
③ 은행
가을이 되면 은행 열매를 밟아 곤욕을 치룬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2억 년 전에도 지구에서 자랐던 몇 안 되는 식물 중 하나다. 요리나 약재로 사용되는 은행은 엄밀히 말하면 열매가 아닌 씨앗이다. 은행의 과육은 부드럽고 전분이 풍부하지만 냄새가 고약하고 피부에 염증을 일으키는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에 완전히 제거하고 씨앗만 섭취하는 것이다. 한방에서는 기침을 멎게하는 효능으로 한약에 사용하고, 쫄깃한 식감과 풍부한 향미로 꼬치나 약밥 고명 등으로 섭취하고 약선요리에 자주 이용된다.
가을에 먹으면 좋은 대표 약선요리 세 가지
· 연잎에 싸인 건강한 선물 연잎밥
한방에서 연잎은 해독작용을 하고 피부미용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산화 작용으로 인해 성인병 예방과 노화를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연잎밥은 널따란 연잎 안에 찹쌀과 흑미, 은행, 대추 등의 잡곡과 땅콩 등의 견과류를 넣어 짓는 밥으로 연잎을 펼쳤을 때 다양한 재료가 어울린 밥 위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연잎밥에 곁들이는 반찬 역시 연근 등 연에서 나온 재료를 쓰는 경우가 많다. 연잎을 벗기는 재미, 쫀득한 찹쌀의 감촉, 코끝으로 느끼는 연잎향과 고소한 밥맛이 어우러져 온몸으로 건강함을 느낄 수 있다.
· 대표 보양식 오리와 한약재의 만남 약선오리전골
보양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 중 하나는 오리고기다. 오리고기에는 불포화지방산이 쇠고기나 돼지고기보다 월등히 많이 포함되어 있어 혈중콜레스테롤을 낮춰주고, 혈관질환 예방에 효능을 보인다. 약선오리전골은 그 자체로도 건강식품으로 인정받는 오리고기에 각종 한약재를 더해 대표적인 약선요리로 인정받고 있다. 황기와 오가피, 뽕 등의 한약재를 넣어 끓인 물을 육수로 사용하고 각종 버섯과 고추를 넣어 깊은 풍미를 더한다. 약초는 각기 다른 효능으로 건강에도 좋지만 자칫 비린내가 날 수 있는 오리고기의 잡내를 잡아주어 깔끔한 국물을 맛볼 수 있게 한다.
· 간단히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생활 약선 요리 황기들깨수제비
황기는 예로부터 허약한 체질을 보강하고 피로감을 없애주는 식물로, 인삼과 비슷한 약효를 지닌다고 알려져 있다. 한방에서는 황기의 뿌리를 약재로 사용하고, 삼계탕 등 보양식에도 재료로 사용되는 등 우리에게 매우 생소한 식물은 아니다. 그렇다면 수제비에 황기가 들어간다면 어떨까? 밀가루와 황기가루의 비율을 8:2로 하여 면을 반죽하고, 육수에도 황기를 1~2 뿌리 정도 넣어 요리하여 제대로 황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고급 음식점에서 주로 다루어 손이 많이 가는 다른 약선요리에 비해 비교적 쉽게 조리할 수 있는 생활 속 요리라는 것이 장점이다.
글 : 박인혁
사진 : 박성일
푸드&스타일링 : iamfoodstylist
출처 : 농식품 소비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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