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깊은 산골 마을, 앞산 뒷산 푸르러집니다.
빈 논에 어린 모가 들어가 자리 잡기 시작하면
아침저녁으로 새끼를 불러내는 뻐꾸기 소리가 요란해집니다.
밭에 앉아 일하다가 들려오는 처절한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끔 그런 생각도 듭니다.
‘뻐꾸기의 모성도 참 슬프구나.’ 했는데, 마을 형님이 마을 게시판에 올려주신
뻐꾸기 탁란 사진을 보니 좀 얄밉기도 하더군요.
마을 농가의 창틀에 여섯 개의 알을 낳아 놓은 할미새를 보고
잘 길러줘야겠다고 하셨다는데, 어느 날 가보니 무사히 부화한 노랗고 예쁜
할미새의 아가들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커다란 알 하나가 놓여있더랍니다.
그러더니 이 녀석이 이렇게 뻐꾸기로 부화했다네요.
그것도 모르고 할미새 부부는 자기보다 더 큰 뻐꾸기 부리에 벌레를 물어다가
열심히 먹여 키우는데 자칫하면 할미새가 뻐꾸기 입안으로 들어갈듯하더랍니다.
말로만 듣던 뻐꾸기 탁란 현장을 보니 할미새가 어리석어 보이면서도 불쌍하고,
뻐꾸기가 얄밉기도 하고 그렇다면서 안타까워하시네요.
이 어머님이 사진을 찍으니까 할미 새는 자기 새끼인 줄 알고 어떻게 할까봐
공격하고 요란하게 방어하더니 드디어 뻐꾸기 새끼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네요.
자연이 하는 일이지만 이런저런 심란한 생각이 많이 들게 하는 모습입니다.
한 평생 새끼를 돌보고 기를 수 없는 뻐꾸기 어미도 불쌍하고,
자기 새끼인 줄 알고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할미 새도 불쌍합니다.
(예전에 저희 집 창고에도 무당새가 알을 낳아 여섯 마리 중 세 마리만 남았었어요.
뻐꾸기 탁란 인듯싶어 마음이 좀 그랬었는데
다행히 나중에 무당새 아가들이 잘 자란 거라 하더군요^^)
요즘도 저희 집 가스레인지 연통 속에 새들이 살고 있는데 박새(무당새)라 하네요.
새들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참 신기하고 마음을 설레게도 슬프게도 합니다.
새들은 새들 나름대로 그렇게 살아가지만 사람이자 농부인 저희들은
저희들대로 또 본격적으로 한해 농사를 짓지요.
일찌감치 작은 하우스 터널을 만들어 찰옥수수 모를 부었습니다.
하루 이틀 갈수록 예쁘고 노랗게 싹이 올라온 찰옥수수 모 색깔이 조금 더 푸르러지고
마디도 실해지고, 한 뼘 크기 정도로 키가 자랐을 때가 되면 밭으로 나갑니다.
서방님은 심는 기계를 벌려 주고 저는 찰옥수수가 가득한 모판을 웨이터처럼
왼팔에 걸치고 한 포기씩 뽑아 서방님이 벌린 기계 안에 던져 넣습니다.
약 50센티미터 간격을 두고 나란히 심어진 찰옥수수 모 전체
밭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밭 가장자리에 서방님과 나란히 앉아
아기 모가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기원해 줍니다.
애타는 기원 덕분인지 올해는 심고 나면 비가 오고 심고 나면 비가 와서
기특하게도 하나도 죽지 않고 모살이를 참 잘해주었네요.
작년에 심어놓고 나서 오랫동안 비가 안 와 제 서방님이
눈물 한 방울만큼만 내려줘도 살아남는 게 옥수수인데 중얼거리곤 했었는데
오죽하면 이웃집 아저씨더러 소변도 우리 밭에 와서 보라고 농담하던 때에 비하면
올해는 하늘이 알아서 고마운 생명 비를 차분히 내려주었답니다.
덕분에 한 그루도 죽지 않고 무성하게 잘 자란 찰옥수수들,
이제부터는 곁가지와의 싸움입니다.
찰옥수수나 고추, 가지, 토마토, 오이 등 거의 모든 작물은 곁가지를 내어놓습니다.
실한 열매를 얻으려면 원대 궁 하나를 키우고
이렇게 옆으로 나온 곁가지는 모두 제거해 주어야 합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찰옥수수들은 곁가지를 두 개 세 개 내어놓네요.
이제부터 두 고랑을 양쪽에 끼고 바닥에 엎드려서 기듯이 나아가며
하나하나 곁가지를 모두 따주어야 합니다.
해마다 이 곁가지 따 줄 때면 깔딱 모기란 녀석이 제 얼굴을 물어
네안데르탈인처럼 제 얼굴을 울퉁불퉁하게 만들곤 했는데,
저보다 늘 일찍 잠이 깨는 서방님이 제 얼굴 물린다고 거의 다 해버렸네요.
미안해지는 마음입니다. 농사일은 원래 혼자 하면 더 힘들고 지루하고
자리도 나지 않기에 같이 해야 덜 힘든데 미안하고 고맙고 그러네요.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다리에 알이 배어 에구구...
소리를 하는 서방님을 보니 두 배로 미안해지네요.
대신 지난번에 아들과 함께 심었던 하우스의 고추 곁가지는
제가 다 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막내아들도 들어오고, 다리가 아파 못하겠다던 서방님도 나와서 돕고
그래서 이틀 만에 고추 곁가지를 모두 따 주었습니다.
찰옥수수 곁가지는 소를 기를 때에는 소먹이로 주었지만,
지금은 쓸 데가 없어 다 거름으로 버리고 이 고추 곁가지는
하나하나 다 따서 바구니에 모아 담았습니다.
작업이 두 배로 더디긴 하지만 이렇게 모은 고춧잎을
잘 삶아 말려두면 무말랭이와 무쳤을 때 정말 맛납니다.
고춧잎에는 각종 비타민과 베타카로틴, 식이 섬유, 칼슘 등이 풍부하고
비타민 A 함량은 풋고추의 700배, 비타민 C의 함량은 사과의 50배,
칼슘도 우유의 두 배라고 합니다.
특히 베타카로틴은 항암작용을 하고, 고춧잎의 칼로리는 100g당 15Kcal 밖에
되지 않고 식이 섬유도 풍부해 미용과 다이어트에 좋다고 하네요.
(네이버 인용)
그래서 깨끗하게 씻어 끓는 물에 데친 후 일부 고춧잎은
햇볕에 널어 고춧잎 말랭이를 만들고, 또 일부는 초고추장 넣고 무치고
또 일부는 집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고춧잎 무침을 해서 맛나게 먹었지요.
이렇게 찰옥수수를 비롯한 고추, 오이, 가지 등 각종 밭작물들을
모두 심고 나면 제가 서방님께 하는 타령이 있습니다.
ㅡ 나 텃밭 하나 만들어줘요.
ㅡ 또 고라니 씨름 터 만들라고??
몇 해 전부터 작은 텃밭 하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텃밭을 만들어 달라 하니
신이 난 제 서방님, 하우스 반동 전체를 제게 내주어서 이것저것 사다가
잘 심었는데, 그만 올라오는 풀들과 미처 다 손질해 주지 못한 작물들 때문에
정글이 되어 버리고 난 후 실망했는지 그다음부턴 제가 하는 텃밭 타령은
귓등으로 흘려듣고 말더군요.
그러다가 두세 해 전부터는 제가 텃밭 만들어 달라 그러면
ㅡ 저 밭 너 다 가져.
그러면서 피식 웃고 마는데, 서방님이 말하는 그 밭이란 자그마치 천오백 평,
결국은 그 밭 농사일 저더러 다 하란 소리기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에도 또 제가 텃밭을 만들어 달라 하니
서방님이 하우스 가장자리에 김을 매주고 심고 싶은 거 심어보라네요.
그래서 하우스 가장자리에 난 풀들을 모두 뽑아주고, 이웃에서 주신 각종 상추,
청경채, 겨자채, 대파, 비타민 등 각종 쌈채와 브로콜리 등을 심었지요.
이 녀석들도 심고 나니 때마침 반가운 비가 와줘서 하우스 옆으로
비가 들어가 잘 살아남아 무럭무럭 자라주었네요.
덕분에 요즘에는 밥상이 풍성해졌습니다.
수확한 상추들로 토마토 효소랑 해바라기씨 넣고 상추 샐러드 무치고,
또 한 번은 매실액과 간장 넣고 샐러드 무치고, 청경채로는 표고가루를 넣고
된장국을 끓이고, 남는 것은 냉동실에 얼려 두고 겨자채는 김치를 담았습니다.
물론 끼니때마다 참치나 삼겹살을 구워 푸짐하게 쌈밥으로 먹기도 하고요.
제 후배는 이렇게 텃밭 야채들로 밥상을 차리니 뱀 나오겠다며 놀려대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요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웰빙 밥상이 따로 없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남편을 따라 귀농해 27년 동안 농사를 지어왔지만
50이 넘은 요즘에서야 시골살이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는 것 같습니다.
한때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게 아쉽기도 하고,
도시 생활과 함께 어울리던 사람들이 그립기도 하고 농사일 만으로는
생활을 꾸리기 어려워 농사일이 끝난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는
교사 자격증을 활용해 인근 중고등학교에도 다시 나가고,
또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는 입시 학원을 운영하는 등 여러 일들을 해 왔지만
이제 도시 생활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습니다.
산타클로스처럼 이렇게 집 앞 베란다에 선물을 주고 가시는 이웃들이 있고
또한 나이를 먹어도 내가 그만두지 않는 한 평생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요.
요즘 날마다 상추로 밥상 차리는데 또 상추를 종류대로 주셨네요.^^
제 서방님, 베란다에 놓인 상추를 보더니 저랑 눈 마주치자
하하 웃고 나서 노래 부르더군요.
ㅡ 풀만 먹고살지요~~~
그뿐만이 아니랍니다.
다슬기도 주시고, 두릅도 주시고, 돌미나리도 뜯어다 주시고 밤, 대추도 주시고
물고기랑 가재도 잡아다 주시고 산에서 수확한 버섯들도 주셔요.
철마다 이웃분들이 주시는 선물들이 너무 다양하고 많아서
도리어 다른 분들과 나누고 또 어떤 분들은 말도 없이 그냥 집 앞에 놓고 가셔서
누가 주고 가셨는지 찾아야 하는 적도 많답니다.
요즘은 도시에서는 정년이 일찍 인지라 제2의 창업도 많고
귀농귀촌 바람도 많이 불고 있어요.
물론 가끔 농담처럼 어떤 분은 농사일은 정년이 없어 좋다고 하고,
또 어떤 분은 늙어 죽을 때까지 농사일하는 게 뭐가 좋냐며
놀려대기도 하지만 땅과 더불어 살아가며 욕심을 버리고,
자연의 소리를 듣고 변화하는 자연을 보며 해마다 변함없이
가고 오는 계절 속에서 그 계절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평화로움이
농촌살이 만의 장점이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과거 농업 자료(~2021) > [농업 정책] 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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